재테크

구채희 작가의 가계부 클래스 후기 (1) - 강의 수강 이유

돈부마부 2021. 9. 27. 0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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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어린 시절을 되돌아보다.
- 나의 가계부 역사 -

 

꼬꼬마 초등학생

참 감사하게도 우리 부모님께서는 내가 초등학생 때부터 한 달에 한 번씩 정해진 금액의 용돈을 주셨다. 어린 딸에게 경제관념, 돈 관리를 할 수 있는 힘을 길러주려고 노력하신 거다. 그 용돈을 가지고 한 달 동안 내가 쓰고 싶은 곳에, 필요한 곳에 쓰라고 하셨고, 받은 용돈을 다 받지 않고 저금통에 '저금'을 할 수 있다는 것도 알려주셨다. '12살에 부자가 된 카라' 같은 어린이 경제 책을 읽고 싶다고 하면 (자주 있는 일은 아니었다...) 격려하며 책을 사주셨다.

알록달록한 용돈기입장이 나에게 생길 때마다 참으로 기분이 좋았다. 교회나 학교 이벤트 상품으로 가끔씩 용돈기입장이 생기곤 했는데 새 용돈기입장이 생길 때마다 앞으로 열심히 잘 쓸 수 있을 것 같았고, 첫 장을 기록하며 항상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나는 단 한 번도 한 달 이상 용돈기입장을 지속해서 기입해 본 적이 없었다. 그냥 꼼꼼하게 수입과, 지출을 계산해서 적는 것이 나에게는 너무 어려웠다.

 

중딩 ~ 대딩

중학생이 된 이후로도 계속해서 부모님께 한 달에 한 번 용돈을 받았고, 비록 용돈기입장 작성 따윈 전혀 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나는 비교적 용돈을 알뜰하게, 낭비하지 않고 잘 쓰는 편이었다. 용돈이 모자라서 부모님께 더 달라고 한 적은 거의 없었다. 대학생이 되어서도 우리 부모님은 내게 용돈을 주셨다. 지금 생각해보면, 성인이 된 딸에게 매월 몇 십만 원의 용돈을 주려면 얼마나 힘들었을까 싶다. 물론, 부모님이 내게 용돈을 주시는 대신, 나는 공부에 좀 더 몰두해 한 학기를 제외하고는 매 번 전액 장학금을 타 냈다. 덕분에 학비 걱정은 크게 없었다.

 

하지만 용돈만으로는 내가 하고 싶은 활동(쇼핑, 데이트 등)을 다 할 순 없었기에 과외나 학원 알바를 한 두 개씩 하면서 조금의 여윳돈을 벌었다. 부모님께 받은 용돈 안에서 최대한 맞춰서 지출하려고 노력했다. 아르바이트비는 따로 저금을 했다가, 생활비가 정말 모자라면 조금씩 꺼내서 쓰고, 남은 돈은 미래에 있을 무언가를 위해 저축했다. 그 무언가는 보통 '여행'이나 '데이트/이벤트'와 같은 것들이었다.

 

본격적인 독립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을 했다. 엄마는 기다렸다는 듯이 내가 첫 월급을 받자마자 엄마가 납부하던 내 보험료를 모두 나에게 넘겼다. 그동안 이 많은 보험료를 엄마는 어떻게 냈나 싶었다. 정말 감사했다. 본가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에서 첫 근무를 하게 되어서 혼자서 자취를 해야 했다. 다행히 보증금이 비싼 지역은 아니어서 그동안 모아놓은 저금+적금을 깨서 500만 원을 보증금으로 내고 월급 받은 것으로 45만 원씩 월세를 내며 살았다.

 

돈 관리를 정신 차리고 진짜 제대로 해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어서 급한 대로 허접한 엑셀 예산표를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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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지출하는 것을 적는 것은 생각도 안 했다. 아니, 하고는 싶었지만 초등학교 때 용돈기입장에 기록하는 것을 항상 실패하던 그 기억이 내 머릿속에 남아 나는 그냥 '지출 기록 원래 못하는 사람'이라고 단정 짓고, 그저 한 달 정해진 생활비에 맞추어서 살기나 하자! 를 목표로 매달을 살았다. 그래도 나쁘지 않았다.

 

빚이 있는 (미국) 남자와 결혼을 결심

그러다가 평생을 함께 하고 싶은 배우자를 만났다. 갈등이 있어도 언제나 원만하게 해결점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은 남자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영화 같을 정도로 이상적인, 화목한 가정에서 자란 사람이었다. 이런 남자를 놓칠 수 없었다.

 

결혼을 해야 했기에 두 사람의 재무 상황을 속 시원하게 깠다. 서로의 통장 잔고를 깐 날, 남편은 눈에 잔뜩 눈물이 고인채 (뻥 안치고) "Don't marry me"라고 했다. 별 거 가진 것 없는 나에 비해서도 남편이 가진 빚은 꽤나 컸다.

 

남편은 자라면서 경제 교육을 받아 본 적이 없다고 했다. 살면서 부모님이 돈에 대해서 함께 이야기한 적이 없다는 말에 나는 정말 문화충격을 받았다. 한국과 미국이라는 사회 배경을 많이 달라서 그런지, 나와는 굉장히 다르게 자란 남편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당시 남자 친구의 재무상태는 어느 정도였냐면,

 

  • 15살 때부터 아르바이트해서 개인 용돈을 벌어서 썼음.
  • 이 용돈 벌어서 15살 때 중고차도 샀음.
  • 대학교 진학 한 후로는 부모님으로부터 완전히 경제적으로 독립함.
  • 식비도 자기가 벌어 자기가 씀. 
  • 아버지가 교수님으로 재직하고 있는 대학교에 진학해 다행히 미국의 그 어마어마한 학비는 100% 모두 면제됨.
  • 하지만, 1학년 1학기 때 기숙사에 살겠다며 생활비 명목으로 학자금 대출을 받음. (이 대출의 이자는 무려 11%. 이 당시 남편은 만 18살이었음. 18세 학생에게 11% 대출을 내어주는 미국 은행은 진짜 개쓰레기인 거 같음. 이거야 말로 자낳괴? 이건 거의 무지한 사람 등쳐먹는 범죄 아님? 그리고 더 충격적인 건 할아버지가 이 11% 대출에 보증을 서주셨음. 할아버지.. 손주가 11%짜리 대출받겠다는데 왜 안 말리신 거예요??? 대체 왜......? (말잇못))
  • 외국에 교환학생을 가게 됐는데, 여행비+생활비 명목으로 또 학자금 대출을 2개를 더 받음.(이 대출의 이자는 각각 6.75%, 3.5%)
  • 물론 대학생 시절 내내 남편은 아르바이트를 성실히, 열심히, 쉬지 않고 했음. 
  • 대학을 졸업하고 한국에 와서 3년 간 영어강사로 일했음.
  • 하지만 대출에 대해 잘 몰랐던 남편은 (...) '이자'를 아주 성실히 냄. 원금을 열심히 갚아 낼 생각을 안 했음.

결혼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 서로의 재무상황을 깠을 때, 남편은 대학생 때 받은 대출 3개가 있었고, 그 대출들의 이자는 각각 11%, 6.75%, 3.5% 였다. 자기의 빚을 나에게 떠넘길 수 없다며 자기랑 결혼하지 말라면서 우는 당시의 남자 친구를 보며, 이 남자는 내가 먹여 살릴 수 있다는 자신감이 들었다. 이 자신감의 근거는,

 

  1. 남편이 가진 빚이 나쁜 짓을 해서 진 빚이 아니고
  2. 3년 동안 성실히 일을 했으며
  3. 무지함은 공부하고 일깨워주면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남편은 그럴 자세가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4. 그리고 무엇보다 나의 리드를 전적으로 믿고 따라오기로 했다.  

그날 밤, 패닉에 빠진 남자 친구를 위로하기 위해 '너와 내가 같이 돈을 모았을 때의 시뮬레이션'을 바로 작성해서 보여주었다. 

시뮬레이션에 따르면 남편이 가진 3개의 대출은 15개월이면 다 갚을 수 있었다. 이 남자가 혼자 번 돈으로 이 빚 다 갚는 거 기다렸다가 결혼하려면 한 세월 걸리겠지만, 일단 결혼해서 함께 갚으면 늦어도 15개월이면 갚을 수 있었다.

 

자신의 재무 상황에 충격을 받은 남편은 결혼 전에 최대한 많이 자기의 빚을, 자기의 힘으로 갚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다. 그리고 실제로 예정보다 더 공격적으로 대출금을 갚아서 11%짜리 대출금은 결혼 전에 혼자서 다 갚았다. 6.75% 짜리 대출은 결혼식에 들어온 축의금 중 결혼식 비용을 빼고 남는 돈으로 싹 다 갚았다. 결국 부부가 된 후 남은 대출은 3.5%짜리 대출 하나였다. 꾸준히 갚다가 한 750만 원 정도의 학자금이 남았을 때, 코로나19 기간 동안 미국 정부에서 학자금 원리금 상황을 홀드 해줬다. 2022년 4월까지 이 학자금에는 이자가 붙지도 않고, 원리금을 안 갚아도 되는 상황이라서 일단 갚지 않고 기다리는 상황이다.

 

결혼식 준비

결혼을 하기로 결정을 했고, 양가 부모님들께 이야기도 다 했는데, 사실 우리는 결혼 목적을 위해 모아놓은 돈은 따로 없었다. 그냥 내가 "언젠가는 쓸 일이 생기겠지"라고 생각하며 모아 둔 저금이 조금 있을 뿐이었다. 

 

일단 결혼식을 올리는데 얼마가 드는지 예산표를 작성해봤다. 

결혼식 준비 초초초초기에 작성했던 예산표. 다행히 미국에서 따로 결혼식을 또 하진 않았다.

그리고 우리는 8월에 결혼식이 예정되어 있었던 우리는, 2월부터 각자 40만 원씩 결혼비용을 저금하기 시작했다. 그 40만 원으로 중간중간 결혼식에 필요한 물건들을 사고, 신혼집에 들일 가구도 사고, 신혼여행 비행기표, 호텔도 예약하고 각종 결혼식 관련 비용을 준비했다. 예산이 많이 빠듯했지만, 불가능한 것도 아니었다. 감사하게도 부모님이 도와주신 부분(예식장 식사, 미국 시댁 한국 숙소비)도 있어서 가능하기도 했다. 

 

부부로 한 몸이 되어 돈 관리

진짜 부부가 되어 이제 니 돈이 내 돈, 내 돈이 니 돈이 됐다. 연애 때랑은 확실히 다르다. 결혼 후 이런저런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나는 발령이 났고 남편과 나는 서울로 이사를 해야 했으며, 주택담보대출 영끌+부모님의 도움으로 1998년도에 지은 오래되고 낡은, 작은 평수의 저렴한 빌라를 샀고, 신용대출과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 올 수리 했으며, 남편은 일을 그만두고 대학원에 진학했다. 

 

결혼을 하고 나서는 그냥 내가 보기 편한, 내가 알아볼 수 있을 정도의 양식으로 돈 관리를 했다. 예산 관리 잘 하시는 한 블로거 님의 예산관리 엑셀을 받아서, 내가 편한대로 조금씩 고쳐 썼다. 통장 쪼개기를 했고, 한 달 지출 예산을 정해서 그 안에서 소비를 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항상 뭔가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이상으로 더 예산관리를 잘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잡은 예산보다 더 돈을 많이 쓰는 경우가 빈번했다. 예비비가 대충 잡혀 있었기에 큰 문제는 없었다. 하지만 나쁜 습관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계속해서 재테크에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관련 책도 읽고 유튜브를 보게 되었다. 조금씩 펀드나 주식, 다양한 방법의 투자에도 관심을 가지고 공부를 하게 되었다. 지금 모습의 예산 관리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초등학생 때부터 나의 약점이었던, '용돈 기입하기', '가계부 쓰기'를 힘들어도 나의 습관으로 정복해야겠다는 결심이 섰다.

 

그러다가, 유투버 구채희 작가의 가계부 수업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구채희 작가 블로그에 예시로 올라온 가계부 엑셀 양식을 보니, 저렇게 체계적으로 이미 템플릿이 짜여 있으면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강의를 듣고 차근차근 배워 따라 하면 분명 나의 습관으로 만들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마침 돌아오는 토요일에 라이브 강의가 예정되어 있었지만, 하필 결혼식 일정이 있어서 들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간절한 마음으로 '10월에도 또 강의를 열어달라'라고 댓글을 다니, 구채희 작가님이 "녹화본 수업도 있어요~"라며 링크를 알려주셨다.

 

 

구채희 작가's 가계부 클래스 ★녹화본★ 신청하세요

꼭 비공개 댓글로 남겨주세요!! 개인정보 노출된답니다ㅜㅜ 원데이 클래스는 <월 1회 라이브강의>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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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를 들어보니 어땠는지는 다음 편에 따로 적어보려 한다. 강의 처음 부분에 작가님은, '나를 알아야 돈도 컨트롤할 수 있다'라고 하셨다. 그래서 나의 과거를 되돌아보며, 내가 지금까지는 어떻게 돈 관리를 해왔는지 초등학생으로 거슬러 올라가다 보니 한 편의 긴 글이 되었다. 예전의 예산표를 보니 정말 허접하기 짝이 없고 부끄러울 정도다.

 

비록 100점짜리 예산관리는 아니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열심히 살아온 나를 격려하고 싶다. 그리고 구채희 작가의 강의로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된 나 스스로가 정말로 기대된다. 나의 예산 관리 역사는 계속해서 쓰이고 있다. 미래의 나에게 부끄럽지 않은 내가 되기 위해서 내일도 노력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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